올림픽공원, 2017
잔병치례하는 환자가 출몰하는 계절이다. 동네 소아과가 붐비는 것에 비하여 대낮의 거리는 한산하다.
'독감'이라는 손님을 간신히 배웅보내고 나니, '장염'이라는 새로운 손님이 허락치도 않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찾아왔다.
보고싶었단다. 이 얄미운 손님들은 어찌되었든 잘 달래서 보내줘야 한다.
그렇게 2017년 맞이한 첫 휴일은 아이들의 병간호로 시작했다.
정유년을 기념하는 것인지, 오전 내내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잠자던 아이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제 죽도 잘 먹고, 아빠 괴롭히기도 곧잘한다.
때가 되었구나...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고...
또 다른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먼지 수북한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어언 17년, 이쯤 되면 서울지리가 뇌속에 자리를 잘 잡았어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 머리속의 서울은 지하철 노선도가 전부이다.
그 흔하게 접하는 지하철 노선도 표기가 엄청나게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그래도 십수년 살다보니, 각각의 구가 강남 또는 강북 어디쯤에 붙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으쓱)
여하튼 그렇게 지하철을 좋아하다보니, 운전하기를 무척이나 꺼린다.
어쩌면 15년전 폐차까지 갔던 사고 덕에 운전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자동차는 항상 뒷전이다.
아이들 나르는 용도 외에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다.
그렇게 관심을 받지 못한 사물은 결국은 퍼진다. 퍼지기 전에 손을 봐야지...
진단 결과,
양쪽 헤드라이트, 좌측 브레이크등, 좌측 깜빡이등 등이 작동불능 상태임을 확인했다.
뭔가 많이 불편하긴 했었다... 특히 밤운전이 너무 힘겨웠었다...
관심있는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관심없는 것에는 너무도 관심이 없어서 탈이다.
정말 큰일날뻔 했구나...
여튼, 진단 및 처치시간이 3시간정도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길건너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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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散策)이라는 말은 영어로 바꾸기에 쉽지 않은 단어 중 하나다. jaunt 는 짧은 여행이나 나들이의 의미가 강하고, airing 은 바람을 쐰다는 의미, stroll 은 어슬렁거린다는 의미에 더 적합하다. promenade 는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의미의 걷기 또는 행진을 뜻하고, walk 는 말 그대로 걷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어쩌면 산책(散策)은 5가지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울 땐, 몸이라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좋다. 몸을 지치게 만드는 삼각대 같은 도구는 적절치 않다.
일상속에서 부딪혔던 또는 현재 눈앞에서 마주하는 순간에 대해 짧은 호흡으로 사색하며 걷고 또 걷는다. 찍고 또 찍는다. 그리하여 소비하고 또 생산한다.
평화의 문으로 시작해서 평화의 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순환, 내가 좋아하는 지하철 2호선의 순환과 그 결이 같다.
아이들이 연을 날린다. 요즈음의 연은 무척이나 진보했다.
멋지지만 잘 날리기 쉽지 않던 방패연, 못생겼지만 쉽게 날릴 수 있던 가오리연,
그 두가지의 선택만 가능했던 내 유년과는 전혀 다른, 휘황찬란한 독수리연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허나 바람이 없는 따스한 날이라, 연을 날리기가 그리 녹록치는 않은 모양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연과 연이 부딪히기도, 실타레가 서로 뒤엉키기도 한다.
그래, 뭐든 쉬운 일은 없으니까...
전국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공원 풍경속의 하나,
그 옛날 사진 동아리 신입들의 사진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어르신들이시다.
한바퀴를 돌고 나왔을 때도 그자리 그대로...
오후의 뉘인 볕이 흐르는 몽촌토성의 둔덕은 참 포근한 장소이다.
여느 낚시꾼처럼, 포근함을 배경 삼아 shoot !
마르고 쓰러지고 다시 피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말라버릴 것 같은 현실은 곧 다시 피어나게 될 날의 전초전일 것이다.
집앞 공원의 터줏대감은 뚱뚱한 비둘기인데 반하여, 이곳은 까치들이 구역을 접수해버린 것 같다.
귀찮은 사람을 피해 뛰어다니는 조류는 '닭'과 '비둘기'가 전부인 줄 알았건만,
여기 '까치' 추가요...
겨울의 마른 풀 위로 자리잡은 가을의 흔적들이 꽤 근사하게 어울린다.
더운 여름날은 나무 그늘을 찾지만, 추운 겨울날은 나무 그늘을 피한다.
그래도 멀리 피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니, 걸터앉은 셈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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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반려동물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부러워지는 풍경이다.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원하지만, 보호자는 잡다한 생각이 많아서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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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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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아니게 남의 사정을 엿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그것은 목소리 큰 사람의 불찰이라고 해 두자...
왕따토템
토템을 앞에 둔 이들의 의식이 한창이다.
토템 앞에서는 뭔가 들거나 뛰거나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대대손손 만수무강한다고??!!
모닝글로리 노트 표지에서 우린 자주 만나곤 했다.
이렇게 직접 만난 건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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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 모임이었던 것 같다.
정답게 길을 거니시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결국에는 더불어 숲인데...
함께 늙어갈 수있는 벗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노신사가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촘촘한 나무가지들도 덩달아 왼쪽을 가리켰다.
해는 오른쪽에서 왼쪽을 비춰주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설사 오른쪽에 서 있더라도 왼쪽을 가리키고, 왼쪽을 바라보고, 경청해야 할 때가 있다.
시국이 어수선한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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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바퀴를 돌아 다시 포근한 볕의 둔덕 앞이다. 까치들도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남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같다면 참 행복한 일이겠지만,
대개는 그것들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내가 나의 마음에 드는 사진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어찌보면 비겁한 변명이겠지만,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사진을 소비하고 생산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 모르겠다.
규정할 필요도 규정받을 필요도 없다.
세상 일에 이런 조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것은 축복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어슬렁대던 까치는 할 일이 있는지, 갈 곳이 있는지 껑충(?) 날라올랐다.
병원에서도 전화가 왔다.
고갱님 차량의 정비가 끝났다고...
멀리서 봤을 때, 무슨 비닐봉지가 놓여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움직이질 않네...
참 뻔뻔한 토끼다.
문득, 교토 철학의 길에서 만났던 심드렁한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내, 그 심드렁함이 철학적인 사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눈치보지마.
그저 네 갈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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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올림픽공원에서의 산책(散策)을 자축하며...
새해 첫 sel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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