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2019
쪽빛에 기대어 숨을 죽이고 사냥할 대상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여간 만만치 않다. 내게 하나쯤 시공간의 틈을 내어 줄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한바퀴를 둘러볼 때쯤, 눈에 띄는 남녀 커플이 스윽 지나쳐간다. 거리는 0.8m 남짓, 이국적인 선그라스 여성이 반쯤 태워버린 담배를 두손가락으로 집어 한번 빨아내고 있는 찰나이다. 포토제닉한 순간은 눈으로 목격했지만, 카메라는 내 허리즈음에 있다. 손을 들어보았자 늦는다. 어차피 이 거리는 지금 물리고 있는 50mm 렌즈로는 안된다. 내사랑 28mm 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냥 그렇게 흘려보낸다. 하긴 찍어보았자 쓸 용처도 없는 이미지에 취한 사진일 뿐이다. 그럼게 자위하고 흘러보낸다. 이럴 때는 혹시나 하고 같은 공간을 서성이게 된다. 돌부터처럼, 어쩌면 그곳에 원해 있던 전신주처럼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있기를 일분 삼분 오분, 몇번의 셔터를 끊어보았으나, 내 마음과 공명하는 순간은 없다. 순간은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기다림이 꼭 답은 아니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감정으로 피사체를 담아야 자유로운 사진이 나온다.
굳이, 우주를 유영할 필요도 없다. 파란칠을 한 어항의 한 귀퉁이에서 흐느적거리며 수영을 즐기는 여느 오징어도 그 순간만은 자유를 만끽할 테니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미련을 가지고 쪽빛의 공간을 서성여 보았지만, 남은 건 작은 감정의 배설물 뿐이다. 염소똥은 가짜약으로나 쓰지... 이런건...
초상권에 대한 이슈가 많은 요즘이다. 이럴 때는 찍는 이도 찍히는 이도 즐겁지가 않다.
뭐에 쓰려고 이런 걸 하나...
다툼이 날만한 상황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목숨걸고 찍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물론 있다면...
이방인을 찍거나, 내가 이방인이 되거나...
겨울은 제 초라한 뒤안길에 심술이 났는지, 주머니 끝까지 한파를 털어내었나 보다. 춥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 한 요란한 상점에 들어갔다. 물건을 채우고 있던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계속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사과상점에 들어갔다. 오만원정도의 주변기기를 결제한 후 나는 그 영수증이 마치 화장실 이용권이라도 되는 듯이 캐셔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이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 저쪽 별다방쪽으로 가보세요" 라고 한다. 명동에는 화장실이 있는 건물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헐벗고 굶주린 자가 교회로 가듯, 나또한 같은 심정으로 교회로 향했다.
냉담자인 나는 실로 오랜만에 성당을 찾았다. 화장실이라는 기복을 위해서, 역시 언제나 주님은 문을 열고 계셨다...
.
.
.
그저, 별 생각없이 내 마음의 리듬에 맞추어 셔터 끊는 맛으로
오늘도 이방인 놀이를 하다 돌아왔다.
.
.
.
50mm / 명동, 2019
.
.
.
'day by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을지로, 2019 (0) | 2019.04.08 |
---|---|
명동, 2019 (0) | 2019.03.23 |
cafe fine, 2019 (0) | 2019.02.24 |
눈오는 날, 2019 (0) | 2019.02.19 |
또래 친구들, 2019 (0) | 2019.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