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으려했던 가을의 이야기, 2016 (Kyoto)
그리고, 잡으려했던 가을의 이야기, 2016
다분히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지나가버린 가을을 잡으려 한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내 어린 시절의 꿈은 과학자였다. 하긴 그 때는 누구나 의사, 과학자 또는 대통령 또는 장군을 꿈꾸었었다.
어린 마음에 타임머신을 만들어보겠다고, 책상 한켠에 실험공간을 꾸며보기도 했었는데, 재료라고는 사기접시 위에 전자시계가 고작이었다. 내 힘으로는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나이만 먹다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행우주론" 에 대해 생각하다가 극도로 허무함을 느끼거나, 또는, "우린 언제든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만 '망각' 을 덤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갔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고로 우린 항상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라는 궤변을 늘어놓기에 이른다.
한때, 물리학도를 꿈꾸기는 하였으나, 물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속 한 순간이 있다. 바로 1978년작 슈퍼맨 I,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비분강개한 슈퍼맨이 하늘로 날아 오르더니,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여자친구를 구하는 장면이다.
과연 슈퍼맨은 어떻게 시간여행을 했던 것일까?
지구를 거꾸로 돌려서 시간을 거꾸로 가게 했다는 설과, 광속을 초월해서 과거에 도달했다는 설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진위여부는 알 길이 없다. 공상과학은 '공상'에 더 무게가 실려있으니...
그렇다면 공상이 아닌 현실에서 지나가버린 가을을 잡으려 한다면, 수퍼히어로가 아닌 나는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다...
비행기타고 남쪽으로 가면 된다...
한국과 교토의 단풍 절정시기는 약 3주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가을을 잡으러 B급사진 멤버들과 교토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돌려 이야기하니 무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교토에 도착!
교토역 앞의 흔한 여인숙, 아... 단정, 정갈, 깔끔 등등의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이 첫인상처럼, 교토의 구석구석은 단정하고 단아했다.
정갈함을 지키기 위한 교토인들의 노력은 때로는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보이기도 했다.
정말 쉴새없이 빗자루질을 한다.
특히 료안지에서 목격했던 종류별로 모아 놓은 낙엽 봉지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덕에, 우리들은 여행내내 깔끔한 교토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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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젠지로 가는 길목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화려한 단풍을 기대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내가 사진으로 보았던 교토의 단풍은 원색적이며 풍성하고 화사한 결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딱 한번의 기회가 있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좌표를 잘못 찍어서 살짝 어긋난 시간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교토의 단풍 절정주간은, 올해 빨리 찾아온 추위로 인해 한 주 정도 앞당겨 졌다고 한다. 예년보다 일주일정도 가을이 달아낸 셈이다. 잡으려 했던 가을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달아난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꽤 근사한 경험이었다.
난젠지, 난젠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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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칸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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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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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안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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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야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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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이나리타이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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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촉촉한 가을을 기대하였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날만 비가 왔다.
인산인해로 휩쓸려다니던 여우신사에서는 도리이 외에 보이는 것은 우산이 전부이기도 했다.
가을의 극성수기의 교토에는 확실히 사람이 많았다.
가을의 색이 물씬 담긴 풍경을 보는 것도 근사하지만, 그곳이 한산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벗꽃이 흐드러져 날리는 철학의 길을 눈감고 상상해 보지만, 그곳 역시 한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색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걷기에 교토의 거리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여름이나 겨울이라도, 한산한 거리를 평온하게 걸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행지를 다녀와서 재방문을 확신한 것은 홋카이도가 처음이었는데, 교토 역시 가족들과 몇번을 더 와볼 것 같다.
드넓었던 홋카이도와는 다른 풍모의 교토,
그 작고 아름다운 길들을 한동안 그리워할 것이다.
가을을 잡으러 교토에 왔지만, 그것과는 다른 것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잡으려했던 가을의 이야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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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SL (typ601) / 24-90 Vario-elmarit-SL, asph 1:2.8-4 / kyot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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