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나라
전라남도에 와본 것은
2000도 대학에 갖 입학하고 고교시절의 친구녀석들과
목포, 땅끝마을(해남)을 거쳐 보길도에 닿았던 시절의 추억이 전부였다.
보길도 해변에서 끓여먹었던 닭도리탕과, 그 지역에서 파는 김이 참 맛있었다는 등의 기억이 난다.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련을 마치고,
대부분은 군의관 생활을 하지만,
올해 치의학전문대학원의 여파로 공중보건의사가 무척 부족했는지,
운좋게 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월에서 4월 4주간의 육군훈련소 생활은,
사실 그 순간을 즐기고 잘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떠올리거나 상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이제까지 머리속을 맴도는 것은
그 곳은 귀한 젊은이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는 것이다.
국방의 필요성에 대한 의미없는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세금을 더 내서라도 그 귀한 젊은이들에게 더 좋은 옷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별탈없이 훈련을 마친 4월 하순,
공중보건의로 복무하게될 1318명은 각자 자신이 근무하고싶은 장소를 적어서 제출하였다.
지명방식은 난수번호 생성을 통한 난수번호 순위순...
가족과 지내고 싶던 나는 TO 가 5명뿐이었던 경기도에 소신지원을 했고,
난수번호가 1289 번이었던 덕분에
치과 공중보건의중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던 전라남도(1지망 0명)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은 대개 자신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바라보기 마련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은이들이나, 또는 군의관이 된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을텐데,
자꾸 왜 더 편한 생활만을 동경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또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나는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 생활을 보내게 될 것이다.
다른 땅, 다른 문화, 다른 말씨, 다른 음식 등
모두 생소한 것들 투성이이며
이질감마저 느끼긴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3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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