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엄'
첫째에게 글씨 쓰는 것을 가르친다.
어떤 아이들은 이른 시기에 한글을 깨우친다고 하지마는 우리 아해는 그렇게 빠르지는 못한 편이다.
그래도 알려주는 글자를 곧잘 따라쓰곤 한다.
오늘은 첫째가 갑자기,
"아빠, 이번에는 내가 쓴 것을 아빠가 따라써 봐"
첫째가 쓴 글자는 '마엄' 이었다.
'마엄' 이라고 쓰고 '엄마' 라고 읽었다.
나는 첫째를 설득하여 비교적 어려운 낱말인 '다람쥐' 를 쓰게 한 뒤, 약속대로 내가 직접 '마엄' 을 쓰기로 했다.
'마엄' 이라고 썼지만, 첫째는 나에게 '엄마' 라고 쓰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볼펜을 그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번 쓰고, 두 번을 쓰고, 세번 남짓을 썼을 때,
낯설은 그리움을 느꼈다.
이 두 글자의 쉽디 쉬운 단어는 내 손으로도, 내 입으로도 지난 이십년동안 써보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말이다.
속이 빈 놋쇠 사발을 두드린 것마냥
그 둔탁한 울음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첫째가 "아빠, 빨리 쓰세요" 라는 말로 나를 잡아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째의 말대로 나는 빠르게 획을 하나하나 그어나갔다.
목마름은 글씨 뒤에 남겨 놓았다.
언젠가는 그 갈증을 풀 날이 있기를 기약하면서,
마른 목에 지금 물을 축이지는 않았다.
'마엄',
아직 나에게는 뜻조차 없는 음절의 조합이 '엄마' 라는 말보다 더 편하다.
'마엄,
나에겐 막연한 희망과도 같은 울림이었다.
'마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면, 그 의지만큼이나 큰 슬픔을 오로지 내 홀 품안에서 녹여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잊었던 울음을 며칠동안만 다시 꺼내보기로 한다. 손수건이 마를 때까지만,
'day by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카치카 (0) | 2013.07.22 |
---|---|
그 사이 훌쩍 큰 아이들... (0) | 2013.07.08 |
가을, 2011 (0) | 2011.11.14 |
병풍바위, 한라산 (0) | 2011.10.31 |
산굼부리, 제주시 (0) | 2011.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