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ar F2, 길들어가기...
유부남의 선물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Sinar F2 를 만난 것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에게 하는 큰 선물,
대형카메라 Sinar F2,
이름처럼 '신나' 는 하루였다.
대형을 시작한 것은 사실 호기심 반, 허영심 반이었다.
조금이라도 기력이 더 남아있는 젊은 시절에
대형카메라는 한번쯤은 꼭 써보고 싶었다.
대형카메라의 아이덴티티는 'movement' 라는 생각에,
필드형보다는 movement 에 유리한 뷰형 Sinar F2 를 선택했다.
대형카메라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뷰카메라인 Sinar F2 를 사용하시는 '오짜르트'님의 블로그와
필드형 카메라인 Linhof Technica 를 사용하시는 '안태석'님의 블로그를 보면
대부분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프로는 작업할 주제를 정하고 용도에 필요한 장비를 선택하지만,
나같은 장비쟁이 들은 카메라를 선택하고, 뭐든 찍는다.
그러다 보니...
소형으로 찍어도 충분할 피사체를 굳이 대형으로 이렇게 힘들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아주 빈번하게 들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접근이었다.
아이들도 거대한 판으로 보이는 상이 신기했었는지,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누라는 다른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인간이 대체 뭘하려고 이러는 건가...'
순전히 삼각대에 올려서 가지고만 놀았다.
필름을 필름홀더에 넣는 것부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지나는 나의 장농속에서 빛을 피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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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후인 4월 중순,
나는 큰 결단을 내리고,
문을 나섰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차피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내 튀어나온 배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10컷을 찍었다.
처음 현상을 시도한 6컷은
암백이 터지는 등의 미숙함을 이유로 하이얗게 태워졌다.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구의동, 2016
남은 컷들도 좀 이상하다...
그렇다. 빛이 새었다.
필름홀더가 노후되어 그런 것인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뿔사, 어느 필름홀더가 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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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열흘 뒤,
천안에 계신 우면산님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어 2차 출사를 진행했다.
공세리성당에서 우면산님께서 담아주셨다.
찍는 사람에게 찍힐 수 있는 기회는 무척 소중한 경험이다.
정말 감사했다.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천안, 2016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빛이 샌 부분들이 여전히 있다.
필름홀더, 아뿔사... 이번에도 어느 녀석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수확이 있다면, Toyo 제품의 홀더 2개는 온전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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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아침, 우면산님과 매산님과 함께
뚝섬을 걸었다.
사진을 찍기 보다는 좋은 말씀에 귀기울였다.
딱 두컷
역시나 빛이 샛다.
이날 사용한 홀더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감별, 폐기처분되었다.
포커스 존을 비스듬히 설정하고, 나름 기다렸다가 누른 컷인데,
행인들이 포커스존을 벗어난 후다...
대형카메라의 특성상 SLR 처럼 보고 찍을 수는 없으니 별수 없다.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뚝섬유원지, 2016
역시 무브먼트 놀이,
유치하지만 대형 뉴비인 내겐 재미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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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사진찍히기 싫어하는 아내와 둘째를 간신히 회유하여
인물 사진을 담아보았다.
조명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형으로 조명까지 치밀하게 작업해 낼 자신은 없었다.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at home, 2016
그저 무브먼트 놀이에 열중일 뿐이다.
아내가 이글을 보고 있다면, 한 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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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은 부모님을 담아드렸다.
역시 무브먼트 놀이...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at home, 2016
다음엔 좀 노력해서 잘 찍어드려야겠다.
(인물은 역시 조명이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지나는 다시 장농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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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개월 후,
2016-10-19 휴일날 백만년만의 대판 출사...
이번 출사의 목표는
1. 지긋지긋한 빛샘 홀더 감별,
2. SP445 test
이다.
용마랜드에는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었다...
참 신기했다.
빛이 새는구나...
찾았다 범인... 아웃!
너도 샛구나 ㅜㅜ
이건 뭐 대형으로 홀가놀이를 한 것마냥...
건망증 및 프로세스의 오류에 대해
나 같은 아마추어는 의도한 다중 노출이었다고 끝까지 우길 것이다
Sinar F2 / 135mm apo sirona N / HP5+ / Rodinal 1:50 / V800 / 망우동, 2016
이로서 폐기처분할 홀더 5개가 정해졌다...
온전한(?) 6개의 홀더가 남았다.
대형으로 촬영한 수는 아직은 간단히 셀 수 있는 수치이다. 38cut...
그런데 아직 그 컷들중에 제대로 찍은 것이 한장도 없다.
대형은 말 그대로 정말 큰 삽인 것만 같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엿바꿔 먹을 생각도 하긴 했으나,
샵에서는 정말 엿바꿔먹을만큼만 쳐준다고 했다.
그냥 갖고 있는 편이 좋겠다.
이번에 지나는, 나의 자동차 트렁크로 들어갔다.
삼각대, 노출계, 그리고 일포드 HP5+ 가 장전된 필름홀더들과 함께,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어디든 나가서 몇컷씩 담아보아야겠다...
불량홀더들도 감별해 내었고,
사용법을 어느정도 숙지하고,
익숙하게 카메라를 다룰 수 있으니,
촬영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대형카메라에 입문하고 바로 접으시려는 분이 있다면,
적어도 50cut 은 촬영해보고 결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라, 내가 이런말을 하긴 좀 건방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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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존재 자체로
밀물처럼 다가오는 장비병들을 방어해 준다는 것...
사진으로 해 낼 수 있는 표현력의 정점이라서 그러한 것일까?
음... 이미지 서클이 좀 큰 150mm 렌즈 하나를 들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 다시 장비병으로 귀결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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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은 종종 선택에 도움을 준다.
대형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무브먼트도, 해상도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방망이깎는 노인을 보채던 사내에서,
느릿느릿, 방망이를 직접 깎는 사내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2016-10-2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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