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꿈꿨던 카메라, Canon IV sb2 (1954)
1932년 Leica II 가, 1933년 Contax I 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을 위한 소형 카메라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히로시마 출신의 Goro Yoshida (1900-1993) 는 Leica II 를 분해해 본 후, 다이아몬드 같은 것도 들어 있지 않고, 황동, 알루미늄, 철, 고무만으로 이루어진 카메라가 너무 고가인 것에 대해 분개했다고 한다. 당신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월급이 70엔, Leica II 의 가격은 420엔이었다고 한다.
Prototype 'KWANON'
요시다는 Leica II 를 카피하여 프로토타입인 콴온(KWANON) 을 제작했다. 그가 불교에 심취한 이유로 '관음' 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프로토타입으로만 존재했던 KWANON 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요시다는 실험실에서 카메라를 만드는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하여 1934년 연구소를 떠났다고 한다. '캐논' 이라는 브랜드 명칭은 KWANON 에서 온 것이니 요시다는 떠났어도, KWANON 의 이름은 길이길이 남은 셈이다.
HANSA CANON
라이카의 모방품으로 1936년 2월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HANSA CANON 은 Nippon Kogaku Kogyo (Japan Optical Industries, Inc., Nikon 의 전신) 와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바디는 캐논의 전신인 정밀광학기기연구소(Precision Optical Instruments Laboratory)에서, 렌즈는 니콘의 전신인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Japan Optical Industries, Inc.)에서 제작한 것이다. 두 브랜드의 합작이 참 이색적이다.
HANSA CANON 이후 캐논은 J,S,NS 등의 모델을 도입하였다. 캐논의 목표는 라이카를 따라잡고 라이카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패망한 이후, 대부분의 카메라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전후복구기간중 최초로 만들어진 J II 는 1946년 소개되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거리계와 뷰파인더를 하나로 통합한 S II 를 선보였다.
1949년 사용하는 렌즈에 따라 뷰파인더의 배율을 3단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II B 를 발표했다. CANON II B 는 전후 정밀광학산업의 초석이 되었다.
Canon II B
그후, III, IV, III A, IV sb 를 차례로 발매하였다. 그중 명작으로 손꼽히는 IV sb 는 전자플래시 'X' 의 동기화를 가능하게 했다. IV sb 는 전자플래시 동기화 기능이 있는 세계 최초의 35mm 거리계 카메라였다. 1954년 3월에 발표된 IV sb2 에 이르러서는 라이카와 같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Cann IV sb2 : 전작인 IV sb 에서 개선된 셔터 다이얼이 눈에 띤다.
이 카메라는 이중 이탈 메커니즘이있는 느린 조정기를 사용하여 1/15 초 셔터 속도를 얻었다. (미국식셔터 표기) 1/15 셔터 스피드의 출현과 함께 최초로 셔터 속도, 렌즈의 F 조리개 범위와 노출계 표시가 기하학적으로 2 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IV Sb2 출시 직전, 1954 년 서독 쾰른에서 개최 된 제4회 Photokina 에서 'Leica M3' 가 공개되었다. 'Leica M3'는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에 대한 기존의 개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완전체였다.
'Leica M3' 를 처음 보았던 캐논의 엔지니어들은 뷰 파인더의 밝기와 시야 및 거리 측정기의 정확성, 카메라의 완성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IV Sb2' 가 사용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논 엔지니어들은 카메라 업계가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카메라 역사의 큰 변화를 예고하였으며, 캐논으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유도했다.
밝은 뷰 파인더와 정확한 레인지 파인더를 가진 'Leica M3' 을 모방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으므로 캐논을 포함한 많은 카메라 제조업체는 미래의 세계 시장을 이끌 카메라에 대한 개발 목표를 전환해야 했다. 일본의 카메라 제조업체는 일본의 기술을 사용하여 개발할 수있는 시스템 기능을 갖춘 SLR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SLR 카메라는 망원 렌즈 사용을 포함하여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의 한계를 극복 할 수있는 새로운 카메라가 되었다.
참고문헌 : Canon Camera Museum / History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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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카메라, Canon IV sb2
거리계와 파인더가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르낙과 형태나 기능이 거의 유사하다.
언급했던 바와 같이 셔터는 미국식 셔터속도가 도입되었다. 그 시기는 라이카보다 더 빠르다. 이것은 초기의 M3에서도 도입되지 않았다. (초기 M3의 셔터는 유럽식을 따른다.) 바르낙 중 미국식 셔터속도가 도입되었던 Leica IIIg 는 M3 보다 늦은 시기인 1957에 발매되었다.
필름 스풀은 라이카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게 만들어졌다.
바르낙에서는 거리계의 디옵터를 조절했던 레버는 캐논 바디에서 사용하는 렌즈에 따라 뷰파인더의 배율을 3단으로 조정할 수 있는 레버로 대체되어 있다. (0.67배, 1배, 1.5배) 이 기능은 1949년 Canon II B 에서부터 적용되었다.
0.67배
1배
1.5배
플래시 싱크 접점과,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아답터
바르낙을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 한가지는 셔터를 장전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셔터 스피드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IV sb2 는 다르다. 셔터의 장전여부와 관계없이 내부의 화살표를 통해 셔터스피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능을 개발해 내고 의기양양했을 캐논의 엔지니어, 그리고 출시 직전 출현한 M3 의 완전한 새로움에 망연자실하며, 좌절했을 그의 모습이 측은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를 꼭 격려해주고 싶다. 당신은 정말 멋지게 해내었다고...
Leica IIIf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라이카의 아름다움은 양 끝의 곡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바디의 두께에 따라 곡선의 곡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히나 얇은 두께의 바르낙 바디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캐논이나 니콘등이 이 곡선을 따라하지 못했던 이유는 1.라이카의 특허, 2.제조단가의 상승 등이 이유라는 설이 있다. (근거는 명확치 않다.)
흔히 바르낙의 모방품으로 간주되는 캐논 Leica Screw Mount 카메라들의 가격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노출을 정하기 편한 미국식 셔터 속도를 택하고, 그 설정이 용이한 IV sb2 는 바르낙의 불편한 점을 긁어줄 만한 카메라이다. 물론 곡선의 바르낙이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은 맞다. M3가 정말 대단한 카메라인 것도 맞다. 그럼에도 나는 바르낙과 더불어 비운의 카메라 IV sb2 를 함께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역사는 승자만의 것은 결코 아니니까...
최고를 꿈꿨던 카메라, Canon IV s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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