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야쿠시마의 기억
야쿠시마는 옥구도 라고 불리는 옛섬이다.
나무와 원숭이와 사슴이 많은 섬,
오키나와 인근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이 원령공주의 숲을 스케치한 곳, 다시 말해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가고시마 현을 통해 배편으로 이동하는 것이 통상적인 이동방법이다.
이것에 간 것이 2006년 겨울, 지금으로부터 8년전의 일이다.
3천살 죠몬스기라고 불리는 나무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여정이었고, 혼자서 떠난 여정이었다.
아마도 약 2주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이곳에서의 기억을 구분지어 보자면
1. 섬에 도착후 유스호스텔에 묵으며 행했던 삽질, 뻘짓
2. 세이코 우도크(주경우독) 민박집에 머물렀던 기억
3.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여행하고 하루 묶었던 민박집의 기억
4. 눈길을 뚫고 만난 죠몬스기
5. 가고시마 현, 료칸에서의 하루
이정도 였던 것 같다.
유스호스텔 근처에서... 참 민폐를 많이 끼쳤던 것 같다.
유스호스텔에 있을 때, 어디든 가야는 하겠고, 갈곳은 모르겠고 해서 허둥대다가 근처의 산에 올라갔던 적이 있다.
국제면허증을 준비하지 않아서, 학생이었던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무작정 걸어야 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올라갔다가... 진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근처 귤밭을 서리하고,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음식을 얻어먹고 간신간신히 산행을 마쳤다.
계속 걸어가다, 너무도 반가웠던 식당,
일본어 회화 책을 뒤져서 내가 꺼낸 두마디
"오나까와 스꾸(내 위가 비었어요)" "오오무리니 시떼 구다사이(많은 양으로 주세요)"
하루는 자전거를 빌려타고 기분에 취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는데, 산중턱을 넘어선 후 해가 지기 시작했다...
칠흙같은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참 막막하던 찰나,
어느 중년의 친절한 아저씨가 트렁크에 내 자전거를 실어주고는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 주셨다.
차안에서 어눌한 일본말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농담 삼아 아저씨 야쿠자 아니냐고 했다.
아저씨는 그저 씨익 웃었고, 자신을 public servant 라고 했다. 그리고 시청으로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시청에 방문했더니, 그 아저씨가 시장이셨다... 엄청 무안했다...
참 훌륭한 공무원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세이코우도크(주경우독) 이라는 민박집을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이동하여 여러날을 묵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섬이었던 야쿠시마에 눈이 내려있는 상태였고,
기상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렸었다.
민박집의 사장님은 유쾌하고 따듯한 분이었다.
본인의 직업이 가수라고 주장하는 분이었다.
절친으로 산하대명(山下大明)이라는 사진가 분이 계셨는데 같이 밴드활동을 하셨었다.
민박의 주인장 아저씨
야쿠시마의 자연을 평생 담아오신 야마시따 히로야키 선생님
라이카R시스템과 니콘F3로 작업을 하셨다.
그분의 암실에서...
히로야키 선생님의 제자분
쓸쓸하게 지내는 나그네에게 재미난 추억을 많이 선물해 주셨는데,
같이 게낚시도 하고
오코노모야키 파티도 하고
고등어 회도 만들어 주시고
등등의 즐겁고 따듯한 날들을 보냈다.
주인 아저씨가 자전거도 빌려주셔서 하루는 작정을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는데...
야쿠시마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일단 원숭이와 사슴들이 참 많았고,
해변을 따라, 강을 따라 즐거운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나 기분에 취해 아무 대책없이 가다가 외딴 곳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었다.
늦은 밤에 도착을 했는데,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주인 아주머니...
원앙과 함께 살고 계셨었다.
다시 세이코 우도크로 돌아와 노천온천도 하고 고등어도 많이 먹고 하면서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중
산행이 가능한 날이 다가왔고,
아저씨들이 캠핑 장비와 옥수수 스프 같은 것까지 모두 챙겨주셨다.
드디어 죠몬스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인가!!
떨리고 설레였다.
죠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길은
옛기억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살아온 원시림과의 대화였다.
가는 길에 츠바사 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교토출신으로 자전거를 타고 일본 전국일주를 하고 있던 동갑 친구였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죠몬스기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저물었고, 산장에서 옥수수 스프를 끓여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여명이 밝아 온 죠몬스기의 뒷모습,
죠몬스기와의 한컷 !
나무들은 참으로 오랜시간동안 우리와 함께 대화하고 살아왔다.
그들의 언어는 바로 침묵이다.
삼천살, 약간 뻥도 있기는 하지만, 죠몬스기를 보고 듣고 있으니,
그 숨결 속에서, 공허할지도 모르는 긴 시간의 고독이 느껴졌다.
다시 세이코우도크로 돌아와서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주인 아주머니가 지병이 있으셔서 정기적으로 육지 병원으로 나가시는데, 내가 떠나는 날과 겹쳐서
가고시마까지 배를 함께 타고 나왔다.
항상 건강하셔야 할텐데...
가고시마현의 밤은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였고, 야쿠시마가 참 이색적인 곳이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가고시마의 료칸에서 하루를 묵고,
떠나기 전, 가고시마의 명물인 모래 온천에서 몸을 풀었다.
여행을 가면 단순히 낯선이가 낯선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곳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 들어가, 아주 조금이라도 삶을 맛보는 여행을 꿈꾸고는 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헛된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던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즐거운 기억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고마운 분들께 EMS 로 이것 저것 부치기도 했으나,
연락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보내드린 사진들이
세이코 우도크의 거실 앨범에 꽂혀 있고,
그분들의 기억에 머무르며, 또다른 나그네들의 기억에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었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8년의 시간이 지났다.
가능하다면 올 겨울은 가족과 함께 야쿠시마를 재방문하는 것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그 분들을 다시 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Olympus E-1 / 14-54mm, 50-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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