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2016
아이들의 개교기념일을 맞아서
오랜만에 쉬는 월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필름소비를 하고 싶어졌다.
나같은 사람에게 필름이란 창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비를 위한 매체일 뿐이다.
그러다가 한번은 얻어걸려서 집안의 벽 한 켠을 수놓을 만한 사진을 남기면 좋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작가님들의 작품을 사서 거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기는 하다.
오후 3시,
혼자 나들이하기에는 심심해서,
떠날 수 없지만, 따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연장들을 챙겨 출근하셨다는 지인에게
궁출사를 권유해 보았다.
예상대로 대답은 콜,
나는 그에게
'복, 경, 덕'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그는 '덕' 을 택했다.
즐거웠다. 나도 내심 '덕'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안국역에 내려 창덕궁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삼각대도 들고 나왔는데, 후원에서는 삼각대 촬영은 어렵겠지? 등의 상상을 하며 창덕궁 앞에 섰다.
이런...
바보같은...
문은 닫혀 있었고, 문지기도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애는 '월요일은 휴궁일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작년 11월에도 월요일 궁출사를 제안했다가, 지구멀미님께서 월요일은 휴궁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던 그 기억이 지금에야 떠올랐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
그래, 망각은 참 좋은 선물이지...
나처럼 창덕궁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시청역에 다 와간다고 했다...
'시청역?'
그의 '덕' 은 덕수궁이었다.
동상이몽...
아... 휴궁일이었기에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언어를 압축해버리면 가끔 이런 사단이 난다.
말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언어는 항상 어렵다...
이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월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경복궁과 종묘, 이 두곳은 화요일이 휴궁일이라고 한다.
그래, 이럴 때 가는 곳이 경복궁이지...
월요일에는 한국의 모든 관광객들이 경복궁으로 모인다.
그리고,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났다.
경복궁에 먼저 도착해서,
새로운 연장으로 한장씩, 한장씩 소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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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좀 극적으로 지나가기를 기대했지만, 펼쳐놓은 삼각대덕에 뱌려심깊은 관객들은 이 곳을 끊임없이 공백으로 남겨주었다.
나는 쉽게 포기했고, 셀프 타이머를 눌렀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인은, '나한테 눌러달라 그러지'
'아, 이것도 테스트의 일환입니다. 전 꼼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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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이가 많은 그의 전화기는 언제나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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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술자리에서 앗제 이야기를 하다가 Starless 님이 해주셨던,
사진의 본질은 '부재에 대한 기억' 이다 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일단 그것에 집중해서 내가 담을 수 있는 내 주변의 예정된 부재를 담담하게 담아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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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film TX-1 / 45mm fujinon 1:4 / HP5+ / 공감e현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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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e현상소를 처음 이용해 보았습니다.
퀄리티가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연장의 첫롤 사진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현상소덕인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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