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관 놀이 (6SL7, GT관)
진공관 앰프에서 초단관이란, 오디오 신호를 증폭시켜주는 첫 단에 있는 진공관을 일컫는다.
가장 초입에서 오디오 신호의 전압을 증폭시켜 주는 관을 초단관이라고 하며, 그 이후의 관들은 회로의 구성에 따라 전압을 조정하거나 임피던스를 맞추거나 하는 등의 드라이빙 역할을 한다. 그 후 최종적으로 출력관에 도달하여 전류가 증폭된다.
다양한 종류의 초단관이 이용될 수 있으나,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관은 mT 관으로는 12AX7(ECC83), 12AU7(ECC82) / GT관으로는 6SL7, 6SN7 등이 있다.
초단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름이 없을 것이다. 단순히 신호 증폭 뿐만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노이즈가 낀다면 최종적으로 그 노이즈까지 같이 증폭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단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음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mT관에서도 초단관에 따른 음질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GT관의 경우 그 차이의 폭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2AX7 등의 mT관은 워낙 작은 크기에 구조물들을 때려박다 보니, 내부 구조물 설계에 큰 차이를 두기 제약이 있는 반면, 큼직한 GT관은 여유가 있는 공간에 구조물들을 위치시킬 수 있어 설계의 자유도가 더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여튼, mT관으로 하는 초단관 놀이가 지루하고 권태감이 느껴진다면, GT 관인 6SL7 로 하는 초단관 놀이에는 분명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SL7 의 경우 RCA 의 관들을 대부분 높게 평가하며, 관 종류마다 그 계급도가 어느정도 알려져 있기에 길을 찾기가 더 쉽다.
정답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멘토이신 SWH 형님의 가이드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BRIMAR(made in britain) >> RCA 5691 red base >= RCA smoked(balck, 회색이 아닌 정말 검정 먹관) > RCA 일반관 > GE 등의 구관
내가 사용하는 앰프들은 대부분 mT관들을 초단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얼마전 기회가 닿아 GT관인 6SL7 을 초단관으로 사용하는 300B SE 파워 앰프를 영입하였다. 전 주인분이 말씀하시기를 당신도 초단관 놀이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다. 초기 구성에서는 GE 구관(니켈)이 꽂혀 있었다.
어후 레벨업이 4단계나 남아있네...
가만히 있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몇달전에 장터에서 RCA 6SL7 일반관 NOS 를 사둔 적이 있었는데... 뒤적뒤적
RCA 일반관으로 레벨업...
인간의 감각은 절대적인 기준을 갖기가 쉽지 않으며, 대부분은 상대적인 비교평가를 통해 그 성질을 인지하게 된다.
GE 관의 소리는 뭉툭하고 뻣뻣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꾸밈없고 힘있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하여 RCA 일반관은 고역이 찰랑찰랑거리는 유연한 떨림을 들려주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유약하고 흐느적거리는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GE 일반관을 끝이 무딘 도(刀)를 휘두르는 남성에 비유한다면,
RCA 일반관은 낭창낭창한 검(劍)을 휘젖는 여성에 비유할 수 있겠다.
무협지를 많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검(劍) 과 도(刀) 는 가는 길이 다르다. 물론 궁극의 이치는 끝이 닿아있겠으나...
레벨업을 해야 하니, eBay 와 장터를 모니터링하다가
앰프를 판매한 분이 RCA 5691 red base 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잽싸게 구입을 했다.
5691은 고신뢰관에 붙여진 형번인데, 오디오에서 고신뢰관은 절대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뻣뻣하고 경질의 소리를 내기 쉽고, 에이징에 어마무시한 시간이 소요된다.
일례로 전설속의 벤딕스 5992 와 GEC 6V6G 를 비교청음 했을 때, 나는 벤딕스 5992 를 바로 창고로 넣어버렸다.
나의 취향탓이기도 할텐데, 힘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보다는 찰랑찰랑하고 유연하고 배음이 넘치는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5691 red base 의 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고신뢰관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경성이 가미된 검(劍)으로 절도있게 허공을 긋는 중년 남성에 비유할 수 있겠다.
RCA 5691 red base 는 창고에 놓고 다시 RCA 일반관을 꽂아서 들었다.
아, RCA 먹관을 빼먹었네... 먹관은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만, 전체가 검정색은 먹관은 특정시기에만 생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먹을 칠해서 소리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마감을 한 시기의 생산방식이 좀 달랐을 것이라는 뜻이다.) eBay 에는 회색먹관이 주로 보이고, 완전 검정색 먹관이 종종 보이긴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럴거면 그냥 끝판왕이라고 하는 브리마로 가보기로 한다.
Brimar 라는 영국 브랜드는 진공관 애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12AX7 등도 크게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고... 다만 12BH7 이나 6SL7 만큼은 평가가 매우 좋다.
eBay 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BRIMAR 6SL7 을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멈추었다... 그 가격때문에...
그 후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정신을 차린 후, 약 열흘이 지났고
무사히 잘 도착하여,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 반신반의하며 앰프에 꽂아보았는데...
두둥...
와호장룡에서 대나무 숲을 날아다니며 칼사위를 주고받는 검객 주윤발과 장쯔이의 유려한 움직임이 떠올랐다...
다 갖추었다... 적절히 힘있게 찰랑거리며, 유연함을 잃지 않는다. 완숙함까지...
관의 진공도 스펙자체가 다른지 해상력도 차이가 난다.
이것은 말로만 듣던 '어나더레벨'....
아... 관을 뽑고 싶지 않다...
역시 한방에 갔어야 했던 것인가...
그러나,
아마 BRIMAR 부터 샀었더라면, 왜인지 모를 지루함과 권태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관들을 또 사들이며, 시지프스처럼 밀어올리고 굴러뜨리고 했을 것이 뻔하다. 그것이 인생~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 본다면,
가성비를 찾자면 RCA 일반관이 압도적이고,
곧 죽어도 좋은 소리라는 강박이라면 BRIMAR 가 탁월한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GE 관이 내주는 소리의 성향이 마음에 든다면! 이런 고행따위가 필요없으니 진정 행운아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창고 안의 불용품들은 쌓여만 가고...
동일한 글을 오디오 커뮤니티에 올렸었는데, 여러 고수분들이 해당 BRIMAR 관이 USSR 에서 OEM 생산한 것임을 알려주셨다.
eBay 에서 자주 거래하던 셀러의 말을 믿고 구매한 것이었는데, 셀러는 USSR 생산품은 UFO 게터가 특징이라며 해당제품이 USSR 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영국산 순정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하지도 않더라... 여튼 쿨하게 환불해 주겠다고 하니, 바로 EMS 로 발송하여 return 시켰다.
BRIMAR 와의 제대로 된 만남은 다음 텀으로 미루기로 한다. 보통 이런 경험을 할 때는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러시아제 6SL7 소리가 왜 그리 좋았던거지??
그럼에도, 굳이 러시아산 제품을 BRIMAR 라는 마크 하나 찍혔다는 이유로 20배의 금액을 지불할 수는 없다.
원효대사와 썩은 해골물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나의 귀를 한 번 긁어보기도 하고...
하기사 같은 경험을 하고도 원효와 의상은 각각의 행보가 달랐으니,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음... 이런 삽질도 종종 해보고, 오디오질이란 이런 것이지 험험
그외 CV1985 라는 군용 형번이 찍혀있는 것을 최고로 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으나, 나는 형번은 형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
ST (Standard Tube) : 20세기초의 4pin 규격 표준 진공관, 300B, 2A3 등
GT (Glass Tube) :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베이스에 유리관이 올라간 구조, 6V6, 6L6 등
mT (miniature Tube) : 2차대전 중에 만들어진 타입으로 소형화, 경량화 및 대량생산을 목표로 도입되었다고 함. 12AX7 등
MT (Metal Tube) : 편의상 M의 소문자와 대문자를 구분하여 통상 금속관을 MT 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AUD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Vintage Audio, 2024 OCT (0) | 2024.10.20 |
---|---|
Audeum, 2024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 (0) | 2024.06.07 |
Date Code of GEC Vaccum tube (생산년도 정보) (0) | 2024.03.14 |
Western Electric 5755 (420A) 대머리관 (0) | 2024.01.28 |
Maybe enjoying 'Vintage' is a Hard Road (0) | 2024.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