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mm : 나와 당신의 거리
사람마다 자신이 선호하는 렌즈의 초점거리(화각)가 있다.
사람마다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렌즈의 초점거리(화각)가 다르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거리는 각기 다르다.
135판형(36mm x 24mm)에서 일반적으로 50mm 를 표준렌즈로 간주하는 것은, 50mm 가 눈에 보이는 영역을 그대로 재현해주기 때문은 아니다. 실제 인간의 한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각은 110도가량, 두눈을 모두 떠서 볼 수 있는 시야각은 약 140도에 해당한다. 135판형에서 50mm 렌즈의 화각은 45도로 눈으로 보는 세상에비하면 비좁기 그지 없다. 50mm 렌즈를 표준으로 꼽는 이유는 눈으로 보았을 때처럼 왜곡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화각에 대한 표준렌즈는 35mm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나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35mm 렌즈를 참 즐겨쓰곤 했었다.
몇년전쯤 한 지인은 35mm 도 너무 좁으니 표준은 28mm 가 맞다고 주장했다. 사실 63도의 35mm 나 75도의 28mm 나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28mm 는 광각의 영역에 더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좀더 광각으로 간다면 24mm 를 택하고, 아니면 35mm 를 택했던 것 같다. 결국 지인의 이야기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나는 점점 더 대상과의 거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당신은 어떤 렌즈를 사용하느냐' 라는 질문의 대한 대답은 초점거리(mm) 로 축약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내가 대상과 교감할 수 있는 거리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필요에 따라 발을 움직여서 만들어낼 수 있는 상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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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mm : 나와 당신의 거리
원근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렌즈의 초점거리(화각)가 아니라 대상과의 거리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광각렌즈로 사진을 찍어서 크롭한 것과, 같은 위치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것의 결과물(피사도 심도는 논외로 하고)은 동일하다.
영상의 촬영기법에 Dolly Zoom 이라는 기법이 있다. Dolly 는 카메라를 앞뒤로 이동하면서 촬영을 하는 것이고, Zoom 은 여러화각을 지원하는 줌렌즈를 이용하여 대상을 점점 확대 또는 축소시키는 것인데, 이 둘을 조합하면 묘한 결과물이 나온다. Dolly 기법을 이용해 피사체와의 거리를 변화시키고, Zoom 을 통해 주 피사체의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배경의 원근감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사진으로 친다면, 36mm x 24mm 의 135판형에서 주피사체가 차지하는 영역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대상과의 거리에 따라 어떤 원근감이 나오는지 아래의 Dolly Zoon 기법 예제 동영상을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랬듯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지금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마이클 제이 폭스가 영화 'Back to the Future' 에서 타고 다니던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꼭 만들고 싶었다. 물론 타임머신도 만들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정말 공상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게되었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고 야망을 가진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이 자랐던 시대의 교육의 기조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금은 수능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양상의 세대라고 한다면, 내가 자랄 적의 기조는 'Boys be ambitious!' 였다. 꿈이 있고 야망이 있지만, 결국 사바세계에서는 그 꿈과 야망이 어떤 타이밍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결국 마모되어 갈 뿐이다. 내용이 어떠하든 역사에 이름을 남기자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름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작 그런 것을 포기하고, 역사속에 그저 '우리' 라는 성원의 하나로 남는 것을 기꺼이 선택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카메라를 좋아하고 욕심도 있지만, 내가 훌륭한 사진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이 너무도 많고,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매진하고 계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 취미 생활의 연장으로 사진가를 꿈꾼다면,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과학자' 라는 꿈과 일맥상통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모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 사진으로 즐거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주변을 기록하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히말라야를 기록하고 누군가는 발칸반도를 기록하고 누군가는 쿠바를, 인도를 기록한다. (못 가서 부럽다 ㅜㅜ) 그런데, 결국 내가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는 곳은 한반도에 있는 내 집과 일터이다. 내 삶의 이유인 가족, 그리고 나의 주변을 나는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다.
굳이 가족들을 노출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내가 찍는 사진의 95%가 가족들이니 피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28mm, 그리고 대상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 떄문이다.
이 사진을 찍은 2013년 1월 1일 이후로 1년이 넘도록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왜였을까? 나는 억지로라도 카메라를 들었어야 했다.
기록의 의미는 연속성에 있다. 그래서 기록은 어렵고 의지를 갖고 해야 하는 작업이다. 나는 스스로 그 연속성을 깨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프레임 라인 밖에 있을 것이 아니라, 프레임 라인 안쪽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되면 애초에 프레임 라인이라는 것, 사진이라는 것은 남지 않게 된다. 28mm 로 보는 세상은 사진에 집착하고 있는 나에게, 대상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의지 그리고 현실간의 절충적인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8mm 의 장점은 사진속에 나의 일부를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를 등에 업은 채로, 목에 걸린 카메라의 셀프타이머 모드를 이용하여 아내와 둘째를 촬영하였다.
28mm 의 또 하나의 장점은 노파인더 샷으로도 부담없이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테이블을 마주한 가까운 거리에서 세여인들을 모두 담을 수 있다.
28mm 의 장점은 미소의 온기가 닿는 거리에서 그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들의 키가 부쩍 자란다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28mm 는 통상 광각에 속하는 렌즈로서 원경이나 근경의 스트릿 사진에도 적절하다.
첫째가 태어난 2007년, 그리고 둘째가 태어난 2009년, 그러나 나는 2014년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집에 있을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턴, 레지던트 생활, 그리고 전라남도 나주에서 공보의 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아이들과 날마다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나는 생후 2년간 형성된다는 애착관계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28mm 로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2017년, 이젠 비로소 아이들을 28mm 로 담아내기 참 편안해진 것 같다. 시간은 수이 흐르고 아이들도 부쩍 부쩍 자란다. 아이들은 사춘기를 보낼 것이고, 성년이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28mm 를 내려놓고, 35mm, 50mm 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멀어져 갈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의 고민은 내일로 미루려 한다. 언제나 오늘을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듯, 나는 오늘 28mm 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길을 거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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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그리고 당신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무척 가까운 사람이라면, 또는 무척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28mm 렌즈를 한 번 대어보는 것은 어떨까?
28mm : 당신과 나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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