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흥미있게 다가가기 : sofort
사진을 찍다보면 사진이라는 매체의 접근성, 진입장벽에 대해서 한번쯤은 고민을 해보게 된다. 1년전쯤, 어느 잡지에 지속적으로 사진을 기고한다는 젊은 사진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장르는 스키장의 보더 사진이었다. 어떤 호기심에서인지 그는 펜탁스의 필름카메라(me super)를 들고 있었고, 최근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다소 의아하였다. 사진이 너무 흔들려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감도, 조리개, 셔터스피드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를 않았다. 그렇다. 그가 작업에서 택했던 카메라는 완전한 자동을 지원하는 DSLR 의 P(프로그램) 모드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밥을 먹겠다는 사람이 너무 무성의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집중하여 고민하는 부분은 작동과는 다른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사진은 어떤 카메라, 어떤 렌즈로 찍었다.' 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이 그림을 어떤 붓과 어떤 물감으로 그렸다.' 라는 말은 생소하고 이상하다. 이는 기기에 의존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진의 태생적인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기기에 열중하고, 더 좋은 기기를 쓰면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사실이고 또 일부는 공상이다.
2006년 야쿠시마에서 만나뵈었던 山下大明(Yamashita Hiroaki) 선생님께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저도 사진을 잘 찍는 사진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너는 이미 사진기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있다면 너는 이미 사진가이다. 네가 찍고 싶은 것을 찍어라." 당시에는 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명쾌한 대답이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진은 다루기 더 쉬워졌다. "셔터를 누르기만 해,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테니" 라는 수십년전 Kodak 의 광고문구는 이제 한톨이 거짓도 없는 온전한 현실이 되었다. 심지어는 모든 과정이 작은 책상위에서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 쉬운 접근성 덕에 사진은 분명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로 접근하는 사진은 쉬울지 모르겠지만, 예술로 접근하는 사진은 여전히 어렵다.
'접근성'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접근성의 또다른 의미는 '흥미' 이기 때문이다. 접근하기 쉬워야 흥미를 가질 수 있다. 대하기 어렵다면 '흥미' 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사진은 무엇일까? 필름사진? 디지털 사진? 그런 류의 고민이 아니다.
'즉석사진'... 찍는 동시에 상을 보여주는 이것은, 손에 쥘 수 있는 최종 결과물을 그 자리에서 바로 보여준다. PC 에 앉거나 현상소에 맡길 필요도 없다. 이것이 전기신호인지 화학신호인지 내 손에 쥘 수 있는 것인지라는 등의 귀신 씨나락까먹는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재생산이 불가능한 단 하나의 순간, 하나의 사진, 그리고 장당 얼마얼마로 환산되는 자원의 유한함을 망각할 수 없는, 그래서 한 컷 한 컷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되는... 이런 즉석사진의 '흥미' 에 대해서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전세계의 누구라도 찍든 찍히든 열광하게 되니까...
즉석카메라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무엇을 찍느냐보다는 무엇으로 찍는지에 더 골몰하는 나에게 흥미로운 카메라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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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ort (typ2754)
: 곧, 바로, 즉시, 즉각
사실, sofort 가 완전히 새로운 카메라는 아니다.
Fujifilm 에서 발매했던 Instax mini 90 neo 와 형제모델이다.
껍데기만 다르고 나머지는 다 같다.
(이 두가지 모델을 비교한 외국유저의 글을 참고하면 쉽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것에 손이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카메라는 예뻐야 한다.
instax mini 용 필름이 들어간다.
사진의 크기는 instax wide 가 당연히 좋겠지만 그리되면 카메라사이즈가 커질 것이고 분명 미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즘 즉석카메라에는 충전지가 들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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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입은 했는데,
눈에 띄는 물건이니 마눌님의 허가가 필요했다.
생존을 위해서 머리를 팽팽 돌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명분은 만들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유한한 자원을 스스로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즉석카메라를 사주었다!"
"궤변이네... 근데 왜 라이카여야 하는건데?"
"어, 원래 즉석카메라는 본체가 싸고 필름이 비싼거야 ==3==3"
"우왕, 아빠 이거 내거 맞지? 우와 이쁘다~"
어라, 그래서 결국 이 sofort 는 민령이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아닌 것 같단다.
스스로 찍어서 의미있을 것과 별 의미가 없을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난사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필요한 것만 담아내기' (근데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나;;;), 그리고 '제한(limitation)을 즐길 줄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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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포항 가족 여행에서 딱 20장의 필름을 건네주었다.
아이는 1박 2일동안 11장의 사진을 찍었다.
고동을 들고 있으라고 하기에 그리했다.
송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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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차창밖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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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서 찍으면 멋지게 나올까? 찍을지 말지 고민되네?"
청송대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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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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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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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심지어 아내도 사진을 한장 찍었다.
이 작은 필름에 맺힌 상의 품질이 어떻다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이 즉석사진 한장, 한장은 기억의 색인이 되어, 언제고 추억을 상기시킬 매개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쁜 카메라로,
사진, 흥미있게 다가가기 : so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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