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노인, 2017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
"일단 가져와서 보여줘야 알지. 그걸 전화만으로 어떻게 이야기해."
전화통화만으로 환자를 진단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 환자를 직접 보고 문진하고, 필요한 검사를 해야 진단하고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다. 아픈 사람을 진료하든 고장난 카메라를 고치든 이치는 같다.
"걱정하지 말고 놓고 가, 대신 보채지는 말고. 서두르면 안돼."
불현듯, 고교시절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읽었던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이 떠올랐다. 자신만의 까다로운 기준으로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명장, 그의 이미지는 '방망이 깎던 노인' 과 너무나 흡사해 보였다.
충무로 중부경찰서 맞은편, 보성카메라 건물의 3층, 그곳에 중앙카메라가 있다.
그의 작업공간은 무척 혼란스러운 정경을 하고 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이런 책상 위에서 수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마치 깨끗하게 소독된 기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병원의 수술방을 상상했나보다.
이것은 그저 나의 눈에 비친 단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혼돈 깊숙한 곳에는 내가 보지 못한 질서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중앙카메라, 김학원
그의 우주, 그의 세상,
...
>> 오버홀(overhaul) : 기계·엔진 등을 분해해서 점검·정비하는 일. 분해 검사. 순화어는 `재생 수리'
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일요일 MBC에서 방영한 '한지붕세가족'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일요일의 일과처럼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곤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럼에도 선연하게 기억이 나는 캐릭터가 있다. '순돌이 아빠(임현식)' 불과 20년전만 해도 동네에 하나둘씩 있던 전파상 아저씨이다. 한국형 '맥가이버'라고나 할까.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패닉에 빠졌던 모든 기계들이 안정을 찾곤 했다. '순돌이 아빠(임현식)'가 했던 그 당시의 수리란 말그대로 재생수리이다. 문제가 일어난 근본을 찾아서 그 부분만을 고치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자본과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재생 수리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의 수리센터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재생수리가 아닌 교체수리이다. 애초에 제품 설계 및 제작을 unit 단위로 하고 문제된 기기가 입고되면 문제를 일으키는 unit 영역을 찾아 통채로 그 unit를 교체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직원교육 및 공정관리도 편리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소비자에게는 비용을 상승을 가져왔다.
"이거 보드를 갈아야 해요."
"그럼 수리비가 얼마에요?"
"보드값이랑 공임이랑 해서 오십만원이요." 이쯤되면 새로 하나 장만하라는 이야기나 매한가지이다.
또한 기업들이 각각 정해놓은 기한을 벗어난 제품들의 수리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50살은 거뜬히 넘은 빈티지 필름 카메라들을 수리할 수 있는 곳은 극소수일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오래된 카메라의 재생수리를 진행하는 수리실은 충무로와 남대문 그리고 예지동에 몇몇곳이 있다.
기업과 자본의 논리로 바라보았을 때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거의 가내수공업이다.
unit 교체를 위주로 하는 수리센터의 공정이 마치 기계가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느껴지는 반면,
재생수리를 하는 수리실의 손놀림은 마치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장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중앙카메라 수리실 정도 되면 직원들도 있고 규모도 어느정도 있을 것을 상상하지만, 중앙카메라는 아직 후사가 없다.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와서 하겠다고 해도 돈을 별로 못버니까..."
"참, 이 나라는 우리같은 사람들한테는 참 박한 것 같아..."
vision 을 보장할 수 없으니, 제자를 거두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리고 오직 혼자서, 그리고 혼자서 소화할만한 분량을 해낸다. 분량이 많아지면 밀리고, 밀리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불편은 의뢰인이 감수할 의무이다.
얼마전 방문했던 부산 국제시장에서 보았던 '거인통닭'의 팻말이다. 읽어보면서 참 인간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 상태에서 가마솥을 늘려 많이 하면 맛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먼저 해야할 것은 지나친 욕심을 소거하는 일이다.
모든일이 순서대로 착착착 진행된다면 좋겠지만, 카메라 수리라는 것이 그렇다. 풀리지 않는 작업이 있다면, 며칠을 그것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리지드 생각치 않게 오래걸리네... 맨 뒤 렌즈가 안 빠져, 그럴땐 약치고 기다려야해. 좀 기다려 봐"
김학원 선생님께 처음 오버홀을 의뢰했을 때, 나역시 가격을 깎아달라는 요구를 했었다.
사람들은 빠르고 싸고 좋은 것만 찾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돈과 그 가치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을 한 것 같다. 3가지중 2가지를 제대로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나는 느려도 좋으니 제대로 된 수리를 받는 것을 결정했다.
비용이야 선생님께서 합당한 비용을 말씀하실 것이다. 보채지 않고 깎지 않는 것, 그것이 작금의 현실에서 내가 선생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예우이다.
...
>> 내가 의뢰했던 카메라들
처음 사용했던 백만번대 M3, 무한대에서 이중상이 약간 틀어진 증상이 있었다. 뒷켠의 작업실로 가시더니 3분만에 뚝딱뚝딱 고쳐주셨다. (뒷켠의 작업실로 향했던 것은 창문을 통해 무한대를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Leica 35mm summilux-m, 1st eyed 렌즈, 아름다운 ollux 후드를 체결했을 때, 약간 삐뚫어진 것이 눈에 거슬렸었다. 그리고 후드와의 유격도 있었다. 렌즈를 분해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후드의 유격은 정밀한 rim 을 깎아 후드에 이식하여 해결하였다.
구매하자마자 말썽을 부렸던 makina67, 수리하시는 분들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카메라 중 하나이다. 특이한 구조때문에 전체 오버홀을 해야만 했다.
파인더가 틀어졌던 M4, 아무래도 거리계 시스템 전체를 손봐야만 했다.
"오버홀은 20만원인데, 파인더만 손보는 것은 10만원이야. 파인더만 손보면 될 것 같은데?"
"선생님, 파인더만 손볼게요. 그런데 선생님 L seal 좀 찍어주시면 안되요?"
"내 L seal 은 오버홀을 해야 찍어주지. 그럼 반만 찍어줄까? (웃음)"
원래 알이 깨끗하지 못한 렌즈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주마론이 너무 써보고 싶어서 구매했었다.
조리개로 뻑뻑하고, 헬리코리드 움직임도 거칠고, 알은 곰팡이에 헤이즈까지 있었다.
뜯었던 렌즈는 쓰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내가
"선생님, 이거 어떻게 좋아질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는 좋아지겠지."
물론 코팅을 먹어버린 곰팡이 자국은 남았지만, 조리개도, 헬리코이드도 정말 새 렌즈마냥 말끔해졌다.
올드렌즈들은 날이 갈수록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Rigid 를 너무 써보고 싶은데 국내에 물건이 없어 이베희 여사를 통해 전기형과 후기형을 한꺼번에 들여왔다. 외관의 상태는 민트급, 그러나 알멩이들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전기형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기운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후기형은 곰팡이가 있었다. 두가지 모두 오버홀을 맡겼고, 흔적없이 맑게 잘 청소되어서 무척 기뻤다. 이 둘중 후기형은 지인에게로 가서 black paint rigid 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예전에 오버홀 받은 이 두가지에 버젼에 대해 분석해 놓은 적이 있다. 전기형과 후기형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참고해보면 좋을 것이다. 50mm summicron-m, rigid (1956-1967), 외형편
사용해본 M3 중 가장 깨끗했던 백십만번대 싱글스트로크 M3, 저속셔터에서 셔터 주행이 불안정한 증상이 보여 김학원 선생님께 오버홀을 의뢰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더블스트로크 바디는 스트록이 고장나면 싱글로만 써야 한다면서요?"
"누가 그래? 그건 부품이 부러져서 그런건데, 부러졌으면 깎아서 만들면되지. 못할게 뭐있어?"
요즘 B급사진에서 핫한 콘탁스용 조나이다. 알은 깨끗했지만, 후핀이 있었고 M바디에서 무한대를 맞추면 거리계가 넘치는 증상이 있었다.
아마데오에서 무한대가 맞지않는 것은 콘탁스의 기선장이 라이카에 비해 너무 길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살짝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뭥미' 하는 반응이셨다.
약 3주동안 어댑터와 렌즈를 조금씩 조정하여 완벽한 칼핀 렌즈로 탈바꿈해주셨다.
"선생님, 이렇게 되면 원래의 콘탁스 마운트바디에서는 무한대가 안 맞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요?"
"수리를 그렇게 하면 안돼~ 렌즈는 제대로 된 어느바디에나 맞게, 바디는 제대로된 어느 렌즈에나 맞게 손을 봐야지."
"오, 그럼 이 조나는 콘탁스 바디에 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이 조나 렌즈가 조립이 까다로워, 신경 많이 써야해."
...
>> Ur-Leica
Rigid (Leica 50mm summicron-m, 1st) 전기형과 후기형의 오버홀을 의뢰하기 위해 방문했던 작년 겨울이었다. "왔어?" 라는 말씀도 없이 선생님은 뭔가에 열중하고 계신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잘봐, 이게 뭔지 아니?" 라는 무언의 질문을 건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퀴즈시간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태는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뭐지? 뭐지?'
슬쩍 돌려 보여주신 각인을 읽었다.
우억! 우어 라익하(Ur-Leica) !!!
1913년 오스카 바르낙은 최초로 영화용 35mm 필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 'Ur-Leica' 를 제작한다. 이 'Ur-Leica' 는 역사상 총 3대만 생산이 되었다. 초호기와 삼호기는 베츨라에 있는 라이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호기는 소실되었다고 하며 그에 대한 자료 등은 전무하다. 소실된 이호기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1918년경 제작된 삼호기는 렌즈없이 바디만 존재하며 다양한 셔터스피드를 지원하는 등 초호기와는 형태 및 기능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다. 내 기억속의 Ur Leica 는 이 빈티지한 초호기였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들고있는 카메라는 대체 무엇인가??
바로 이것, 1970년대에 Ur-Leica 초호기를 본떠 500개만을 한정 생산한 Ur-Leica 복제품이다.
이것은 카메라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조형물에 가까운 기념품이다.
상판에 각인되어 있는 'Nachbildung der Ur-Leica' 는 'replica of the original Leica' 즉 Ur Leica 의 복제품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이베희 여사에게 문의해 보면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체 선생님은 이 기념품으로 뭘 하시려고 했던 걸까...
"이게 그냥 기념품이 아냐... 봐봐 렌즈 초점이 살아있어"
의뢰인은 이 replica 가 필름을 넣어 사용할 수 있는 온전한 카메라로 재탄생되기를 요구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복제품을 온전한 카메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 부품을 제작해야 한다.
Ur-Leica 는 reference 가 될만한 카메라가 시중에 존재치 않는다. 독일 베츨라에 간다해도 라이카에서 일반인에게 그들의 보물을 내어줄 리는 없다.
이 작업은 김학원 선생님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진행이 된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이날 나는 운좋게도 거의 완성 막바지에 이른 'Ur-Leica' 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페어러브, 2009
안성기 주연의 영화 페어러브(Fair Love, 2009)는 카메라 수리공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여기에 김학원 선생님의 귀한 손이 대역으로 출연하였기에 그 장면들을 모아보았다.
...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영화 '페어러브' 에서 "사장님, 콘탁스 다 되었어요?" 하고 몇번을 찾아오는 '콘탁스남(이혁열)'이 등장한다.
몇번을 헛걸음한 이 청년은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지만 수리가 완료된 카메라를 군말없이 받아간다.
극속으로 들어가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전화를 하고 오지;;;'
함께 있던 수제자가 한마디 거든다.
"저렇게 짜증내고 가도요. 저거 고칠 수 있는 분은 사장님 밖에는 없어서, 아마 또 올거에요."
나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선생님, 마키나 다 되었나요?"
"선생님, 리지드 다 되었나요?"
"선생님, 조나 다 되었나요?"
"선생님, M3 다 되었나요?"
"선생님, M4 다 되었나요?"
확인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역시 보채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콘탁스남(이혁열)' 의 억울하고 허탈해하는 표정은 약은 꾀로 보챘던 나의 밉살스러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구입한지 10년이 넘어가면서 고속에서 셔터막 일부가 완전히 열리지 않고 저속에서는 셔터가 늘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추운 겨울이 되면서 셔터마저 간헐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오버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수리하기가 비교적 까다롭기로 알려진 Contax라 선택은 무조건 중앙카메라 수리실 뿐이었다. 보내는 김에 초점링의 원활한 움직을 위해 Biogon 35mm와 21mm도 같이 부탁드렸다. 2주뒤 Contax는 쌩쌩하게 돌아왔고 아름다운 칼 자이즈 렌즈들과 함께 오늘도 내 손에서 즐거움을 주고 있다. 60년이 넘은 카메라가 적절한 수리만으로 여전히 완벽하게 작동된다는 것. 그리고 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PIYOPIYO(우승우/포항)
라이카를 처음 할 때부터 로망 비슷한 게 있었다. 'M3 블랙페인트에 리지드 블랙페인트'
하지만 오리지널은 접근이 거의 어려운 가격이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리페인트라도 해보자라고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바디와 렌즈를 들고 중앙카메라 김학원 선생님을 찾았다. 결국 M3 리페인트와 오버홀, 리지드 리페인트를 맡겼다.
비용은 구한 M3 한 대 값이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단 조금 더 걸렸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페인트가 더디 말랐다고.
완성된 M3와 리지드를 가져오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원하던 것을 이뤘다는 기쁨과 장비에 집착하는 한심함이랄까...
아무튼 이뤘다. 비록 삽질이지만 라이카 최신 디지털바디 신품 깔 때보다 기분이 더 좋다. 글고 제발 장비질은 여기까지이길 소망한다.
행복한바람(홍범희/서울)
...
>> about L seal
'L' seal 의 온전함이 온전한 바디의 기준이라는 낭설이 퍼진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퍼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번 손을 댄 바디는 'L' seal 이 깨진다는 이야기이다.
'L' seal 은 알리바바의 동굴 문이 아니다. 실제로 'L' seal 을 건드리지 않고도 손 볼 수 있는 부분들은 많다.
이 'L' seal 도장은 라이카를 손보는 수리실마다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카메라 수리실에 가서 " 'L' seal 도장 좀 보여주세요" 한 번 해 보면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장의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서 'L' seal 만 보면 어디에서 손을 본 바디인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위쪽은 M3, 아래쪽은 M4 인데 김학원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이 M4는 과거 영상카메라 수리센터에서 손을 본 것 같다고 언급하셨다.
결국 'L' seal 은 mint grade 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장인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
>> epilogue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
최근에 의뢰했던 50mm zeiss option sonnar 1:1.5 렌즈와 아마데오 어댑터의 조정을 마치고, 초점 테스트를 핑계삼아 찍어드린 사진이다. 선생님이 손봐주신 sonnar 가 선생님을 아주 잘 묘사한 것 같다. 다음에 갈 때는 인화물을 들고서 찾아뵈어야 겠다.
...
보채지 말고 깎지도 마라.
받아야할 만큼만 받으실 것이다.
대신 그만큼 완벽한 수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이런 짧은 글로 김학원 선생님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분을 알아나가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므로...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 분들은 스크랩해 놓은 아래의 링크들을 참고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재미난 일화들이 많다.
그의 손이 닿자 고장난 카메라가 세상을 부라렸다, 2008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18세 영화감독, 예비 하버드대생 김윤, 2009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그의 손만 닿으면 생명을 얻는다", 2010 <건설경제신문, 홍연정 기자>
아버지의 수제 카메라, 오염되지 않은 ‘창조’, 2016 <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차근차근수리공이 사는 빨리빨리 세상, 2017 <아버지라는 이름의 노동 6화, 오도엽, 이현석>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앙카메라 수리센터 대표 김학원님, 2017 <큰글씨 좋은생각 2017년 5월호, 김진이>
'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 흥미있게 다가가기 : sofort (0) | 2017.03.25 |
---|---|
28mm : 나와 당신의 거리 (0) | 2017.03.11 |
object : a branch (0) | 2017.02.24 |
Schumann 을 기억하며... (1810-1856) (0) | 2017.02.10 |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2015 (0) | 2015.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