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낙 이해하기 : 셔터 스피드, 가상의 시간...
바르낙에 꽤 오랜 시간 빠져 지냈다.
병약한 오스카 바르낙이 설계한 정교하고 작은 카메라, 바르낙...
'오짜르트'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듯 사진이란 Art and Science 이기에,
바르낙은 카메라 그 자체로 여러가지 영감과 감동을 준다.
종영드라마에 속하는 필름카메라, 그중에서도 바르낙을 고민하고 있는 이에게 '성능' 은 가장 높은 가치 순위는 분명 아닐 것이다.
누구든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내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찾으려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러한 행위 자체가 사진생활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바르낙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가진 이들에게 합리적인 이해를 돕고자 쓰여졌다.
기본적인 부분은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르낙 이해하기 : 셔터 스피드, 가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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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피드란, 셔터가 열리는 시간의 길이를 의미한다.
사진기의 Shutter 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Leaf Shutter 라고 불리는 Lens Shutter, 그리고 상하 또는 좌우로 주행하는 Focal Plane Shutter 이다.
이것은 사진에 흥미를 가진 동시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았을 '바바라 런던' 의 '사진학 강의' 에 잘 비교 설명되어 있다.
우선, 렌즈붙박이 식의 카메라, rollei35, rolleiflex, veriwide, 또는 대형카메라 렌즈에서 사용하는 Leaf Shutter 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보고 가자.
리프셔터는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면서 금속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전히 열릴 때까지 받아들이는 빛의 양이 늘어나며 닫히기 시작하면서 받아들이는 빛의 양이 줄어든다. 셔터소리가 매우 조용하며, 어떤 셔터스피드라도 스트로보와 동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셔터날이 완전히 열리고 나서 닫혀야 한다는 구조적 이유로 가장 빠른 셔터 스피드는 1/500 정도로 한정된다. 같은 이유로 렌즈셔터가 노후되어 빠르게 열리고 닫혀야 할 동작이 정상적이지 않을 경우 주변부 광량저하가 현저하게 나타날 수 있다. 렌즈셔터를 사용하는 카메라에서 주변부 광량저하가 너무 심하게 (동일한 모델의 다른 개체에 비하여) 나타난다면, 렌즈셔터를 오버홀 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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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바디 쪽에 셔터막이 위치한 Focal Plane Shutter 는 대부분의 렌즈교환식 카메라에서 선택하고 있는 셔터방식이다.
선막과 후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행방향에 따라서, 좌우 또는 상하 로 나뉜다.
초기에는 천재질의 막을 사용하였으나, 더 빠른 속도와 내구성을 필요로 하는 후기에 이르러서는 금속재질로 바뀌게 된다.
Focal Plane Shutter 의 기본 원리는 선막이 먼저 주행을 하고, 그 다음에 후막에 따라오는 시간에 따라, 노출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빠른 셔터속도는 선막이 출발하고 곧 후막이 따라가도록 하여 작은 틈(slit) 이 주행하도록 하여 노출량을 조절하여 얻는 것이다.
즉, 셔터스피드란 정해진 노출량을 얻기 위한 가상의 시간이다. 1/500 초만큼, 1/1000 초만큼 한번에 '팡' 촬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셔터막의 주행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사물이 왜곡되어 촬영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Focal Plane Shutter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셔터막의 주행속도이다.
셔터스피드를 무엇으로 설정했든, 카메라의 셔터막은 동일한 속도로 움직인다.
이 정해진 셔터막 주행속도보다 빠른 것을 고속, 느린것을 저속으로 구분하며, 이 값은 카메라마다 다르다.
고속 셔터스피드를 설정한 경우에는 후막을 빨리 따라가도록(후막아 빨리 따라가!) 하여 slit 의 폭을 좁히는 것이고,
저속 셔터스피드를 설정한 경우에는 후막을 천천히 따라가도록(후막아 좀 있다가 움직여!) 하여 노출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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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필름 카메라는 좌우주행식 천(Curtain) 셔터막을 지닌 Focal Plane Shutter 를 채택하고 있다.
초창기의 바르낙(I, II, III, IIIa 등)들은 셔터막의 주행속도가 1/20s 이다. (현대의 카메라들에 비하여 현저하게 느리다.)
따라서, 바르낙에서의 최고 셔터스피드인 1/500 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후막이 더 빨리 선막을 따라가야 할 것이고,
slit 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초기의 바르낙에 사용된 셔터막은 매우 두껍다. 후기의 셔터막들은 부식되고, 갈라지고,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많으나, 초창기 모델들의 셔터막은 멀쩡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두꺼운 셔터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고하다고 하여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 그림이지만, 셔터막이 두꺼울수록 slit 의 틈은 더 좁아지게 된다.
(바르낙의 셔터는 slit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막과 후막의 끝단이 천 셔터막으로 감싸져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실제 셔터막은 이상적으로 편평하지 않다. 어느 부분은 더 두꺼울 것이고, 어느 부분은 덜 두꺼워 울퉁불퉁할 것이다.
그리하여 slit 은 위의 그림처럼 직선형태의 직사각형이 아니다.
오돌토돌한 면에서 양쪽의 볼록한 부분이 서로 만나게 되면 어떤 부분은 틈이 더 좁아지게 될 것이다.
이 좁은 부분에서 노광되는 영역은 노출부족이 될 것이고, 이것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규칙적인 가로줄처럼 보이게 된다.
(셔터막을 얇은 재질로 교체하면 가로줄 현상은 대부분 개선시킬 수 있다.)
또한 셔터의 주행속도 역시 1/20로 딱 맞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편차를 가지고 불균일하게 움직일 것이다.
(옛 부품을 사용한 올드카메라에서 선막과 후막이 균일한 속도로 똑같이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가로줄(slit 의 오돌토돌한 부분이 붙여서 노출부족이 된 경우)이 발생하는 사진도 있고,
좌우의 노출차이(선막과 후막의 주행속도가 불균일함. slit 이 좁은 고속 셔터에서 극대화됨)가 발생하는 사진도 있다.
고로, 초창기 바르낙 모델에서의 고속셔터는 매우 불리한 동작 환경일 수 밖에 없다.
광각렌즈에서는 해의 위치에 따라 위 사진과 같은 현상이 극대화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선막 후막의 텐션을 조절하여 위의 현상을 개선시킬 수는 있으나, 정확한 셔터스피드를 구현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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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c 이후의 주조형 바르낙에서는 셔터막의 주행속도가 1/30s 로 개선되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바르낙 IIIc(Ic), IIIf(If, IIf)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셔터막 역시 더 얇고 날렵한 재질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셔터막 문제가 있는 개체들이 많다. 물론 셔터막은 좋은 수리실을 찾아가 교체를 하면 된다. 돈이 든다는 것이 언제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셔터막의 주행속도가 빨라지면, 고속 셔터스피드에서 slit 의 틈 역시 더 넓게 확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초창기의 바르낙보다 위에서 언급한 가로줄이나, 좌우 노출 불균형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개체들에서 위의 현상들이 발견된다.
셔터막 주행속도가 1.5배 빨라졌고, 셔터막의 재질이 얇아졌지만, 가장 빠른 셔터스피드는 1/1000 로 상향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1/1000 을 커버해야 한다니, 카메라 입장에서는 산넘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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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많은 개체의 바르낙을 구해서, 온전하게 고속셔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많은 공을 들였다.
이것은 단지 비용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전쟁이었다.
1.바르낙을 구한다. 테스트 1롤 촬영한다.
2.필자가 판단하는 오류를 발견한다. 수리실에 오버홀을 의뢰한다.
3.오버홀된 바르낙으로 테스트 1롤 촬영한다.
4.필자가 판단하는 오류를 발견한다. 수리실에 조정을 재의뢰한다.
5.조정된 바르낙으로 테스트 1롤 촬영한다.
문제는 4-5 단계를 여러번 실행하는 경우이다. 심신이 지친다.
초기에는 초심자의 행운 덕인지, 비교적 쉽게 성공하였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 N 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렇다. 나는 필요이상의 카메라들에 이런 공을 들였고, 결국에는 포기한 경우들도 있다.
최근에는 그것들이 너무 많이 누적되어, 결국 오랫동안 신뢰하던 수리실에 등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의 삽질을 기반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애초에 초창기의 바르낙들은 1/500, 1/200 에 대한 보증을 전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사진이 찍히는 것만으로도 열광을 하는 시기였다.
바르낙을 1/100 셔터스피드까지 사용하는 카메라로 규정한다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것들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기 시작한다면 그 때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물론 1/500, 1/1000 셔터스피드에서도 잘 동작하는 바르낙들이 있다.
자, 생각을 해보자.
1/20s, 1/30s 속도를 위해 제작된 스프링 부품중, 일부는 그것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부품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그 정도의 기능을 발휘하는 부품들이 있을 것이며, 일부는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는 부품들이 있을 것이다. 공산품의 제품 편차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1/500, 1/1000 셔터에서 온전하게 동작하는 개체들은 원래 설계된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는 '일부'일 것이다.
이 바르낙이 고속에서 제대로 동작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물론 우리는 미리 알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나처럼 많은 에너지, 시간과 돈을 들여 여러번 시도를 해 볼 것이고,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의 바르낙을 받아들일 것이다.
후자가 훨씬 지혜롭다는 생각이다.
오버홀을 해서 모두 해결이 될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자.
나는 그 환상으로 인해, 필요없을 상처를 만들었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바르낙에게서 정확한 셔터스피드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우며,
관용도가 넓은 네가티브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바르낙을 시험에 들게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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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출시된 M3 에 이르러 셔터막의 주행속도는 1/50s 로 상향되었다.
또한 Slit 의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막과 후막의 끝단이 정교한 금속마감으로 변경되었다. (금속 틀에 천 셔터막을 끼우는 방식으로 변경)
비로소 1/1000 셔터스피드를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이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바르낙 IIIg(Ig) 역시 셔터막의 주행속도 1/50s 로 1/1000 셔터스피드를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다.
(바르낙 IIIg 는 M3보다 늦게 태어났다. 늦둥이, 막둥이다.)
필자는 II model D 를 바르낙의 완성, IIIf 를 바르낙의 정점으로 표현하는데,
IIIg(Ig) 는 단순히 맑고 밝은 50mm finder 파인더를 포함한 커다란 바르낙이 아니라,
가장 안정적인 셔터 시스템을 가진 바르낙,
바르낙의 New ERA 로 보는 것이 맞겠다. 그 자체로 마지막 바르낙이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M3 이후의 바디나 IIIg 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좌우 노출 불균형이나, 가로줄이 보인다면, 카메라의 셔터 설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1000 스피드가 1/2000 초 스피드나 1/4000 초 스피드로 잘못 되어 있는 빈티지 바디들도 종종 있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아나로그 사진을 하려면, 같은 모델이라도 개체마다 셔터스피드가 다를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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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라이카 필름 카메라 중에서 가장 정확한 셔터스피드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전자식 제어 시스템을 채택한 M7 일 것이다.
M7 의 셔터 주행 속도는 1/60s 이며, 배터리가 없을 때도 동작할 수 있는 셔터스피드는 1/60, 1/125 이다.
라이카 필름 카메라 중 가장 정밀한 촬영을 위한 카메라는 M7 이 틀림없다.
그러나 선택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상이한 취향 탓이니, M7 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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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된 금속, 상하주행식 포컬플레인 전자셔터를 가진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셔터막의 주행속도나, 이로 발생하는 에러들에 대해 손톱만큼의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좋은 카메라는 정말 많다.
인간의 판단과 선택이 항상 이성적일 수는 없다.
바르낙이 경박단소를 대표하는 정교한 카메라 중 하나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바르낙이 불편함을 감수했기에 그 크기와 부피를 지켰다는 것에도 변함이 없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모습이 있으며,
바르낙의 좋은 모습들 뿐만 아니라, 부족한 모습들까지 보듬을 준비가 되었다면, 바르낙을 선택하라.
바르낙이 똥이라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이고,
바르낙이 가장 즐기기 좋은 카메라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바르낙을 사용하고 싶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고 충분히 원하는 만큼의 바르낙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은 몹시 피곤하였으며, 섣불리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 국내에 바르낙을 온전하게 수리할 수 있는 수리실은 없다.
만약 있다면, 지견이 부족한 필자에게도 알려주기를 바란다.
전술했듯 바르낙들의 역량은 이미 각각 결정되어 있다.
수리(repair)는 수리(repair)일 뿐, 절대 재생(regeneration)이 아니다.
그리고, 바르낙은 바르낙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운좋게도 쌩쌩한 바르낙을 손에 넣었다면, 관속까지 가져가길 기원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기대해 보는 것도 좋다.
샤르트르가 말했듯,
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마찬가지로 나의 사진생활은 곧 나의 선택으로 가고자 하는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바르낙의 찬가(The paean for Barnack)는 계속 울려퍼질 것이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그 아름다운 울림이 다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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