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The Artist, 2011)
서점에 왔다.
읽을 책 때문이 아닌, 사고싶은 책 때문이 아닌,
그저 책냄새가 그리워서 서점에 왔다.
여는 동네 책방에나 있을법한 그 냄새, 종이 냄새,
종이, 그 따스한 감촉이 그리웠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영화관으로 향했고 무성영화를 흉내낸 '아티스트' 를 보았다.
이 영화의 배경은 무성영화의 도퇴와 유성영화의 등장이 만난 1930년 즈음이다.
영화는 그 때의 추억을 그리듯, 흑백으로, 화면비율은 4:3 으로, 그리고 무성영화의 형식을 흉내내었다.
결국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유성영화이지만, 최대한 무성영화인 척을 하는 영화였다.
배우는 입을 벙긋거린다.
관객은 극의 흐름을 보고, 자기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파악해 나간다.
종종 이해를 돕기 위해 큼지막한 자막이 등장하기도 한다.
언어는 물론 무언가를 부연설명하기에 너무나 유용한 재료이다.
그 덕에 우리는 손쉽게 의사전달을 할 수도 있었고,
기록과 더불어 시공을 초월한 사고의 영속성까지 보증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부족한 것은 '공감' 이라는 가치이다.
'말' 이 사람의 마음을 100% 모두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말이 아닌 하나의 눈빛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짐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았던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을 읽어보면 무슨 소리인지 와닿는가?
분명히 형용사는 잘 사용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글로 번역을 한다면... 음... 어렵다. 오히려 원제의 느낌을 퇴색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한글 영화명도 '이터널 선샤인' 으로 정한 것 같다.
벙긋거리는 배우의 몸짓과 배경음악,
저 사람이 무슨소리를 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지만,
나는 이미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목소리, 언어를 제거해 낸 것이 이처럼 감정에 기폭제가 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고요한 영상만을 보고 정적속에서 관객의 웃음소리가 퍼져나가는 기이한 경험을 해 보기도 했다.
내가 자라면서 보아왔던 뭇 유성영화들은 어쩌면 영화를 본 나의 반응까지 대신한 적도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뭐 그저, 색다른 경험에 의한 reaction 이라고 치부할 지언정... 그래도 흐뭇했다.
사람들은 말로 대화를 한다.
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단어를 사용하고 수식을 한다.
어쩌면 전달하고자했던 나의 뜻, 나의 마음은 그렇게 많은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꾸며진 많은 말들로 오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많은 말이 아닌, 하나의 눈빛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모든 것을 전달받아 뭉클했던 시간
약 100분간 내가 느꼈던 영화 아티스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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